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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의 내구재나 저렴한 비내구재 가릴 것 없이 소비가 꽁꽁 얼어붙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1~11월) 소매판매액지수 감소폭(전년 동기 대비)이 2003년 이후 21년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2003년은 무분별한 신용카드 대출로 카드대란이 빚어지면서 소비와 경제 전체가 휘청했던 시기다. 지난해 소비 수준이 당시에 버금갈 정도로 바닥이었던 것인데, 문제는 올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더 많다는 사실이다.

소비절벽은 승용차, 가전 등 내구성 제품은 물론 의복, 신발, 화장품, 음식료품 등 준내구재·비내구재 전 품목을 망라하고 있다. 더욱이 소비재 전 품목이 감소한 것은 2023년에 이어 2년째다. 통계청에 따르면 2년 연속 전 품목 감소는 1995년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처음이다. 소비의 다른 한 축인 서비스 소비 둔화세도 뚜렷했다. 팬데믹 이후 회복세를 보였던 서비스 생산 증가율이 2022년 정점(6.9%)을 찍은 뒤 2023년 3.4%로 둔화한 데 이어 지난해는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지난해 내내 소비가 기를 펴지 못한 것은 고금리, 고환율, 고물가 영향이 컸다. 막무가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로 사상 최대로 불어난 가계빚 역시 지갑을 닫게 한 요인이었다. 하반기 들어 물가상승률은 1%대로 안착하는 듯했고, 미국 연준의 피벗(정책전환)과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가 시작되면서 소비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일었다. 하지만 예상 못한 비상계엄과 탄핵정국에 휩싸여 회복은커녕 더한 혹한기를 맞은 현실은 기막힐 따름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 때보다 최근 가계·기업의 심리위축 정도가 더 심각하다. 소비자심리지수는 2016년 박 전 대통령 탄핵정국 당시 3개월에 걸쳐 9.4p 하락한 반면 12·3 비상계엄 이후에는 단 한 달 만에 12.3p 급락했다. 기업심리지수 하락폭도 박 전 대통령 때보다 지금이 더 가파르다.
산업연구원이 계엄사태 이후인 지난달 9일부터 24일까지 국내 1500개 제조업체를 상대로 경기실사지수(BSI)를 조사해 12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1·4분기 매출 전망 BSI는 88로 전 분기보다 7p나 하락했다.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 올해 민간소비가 2.3%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올해 초 내놓은 경제전망에서 1.8%로 대폭 하향조정했다.
정부가 소비진작책으로 내놓은 임시공휴일 지정 등 갖은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이 정도론 내수에 온기를 불어넣었다고 말하기에 민망하다. 출렁이는 환율과 다시 들썩이는 물가도 걱정거리다.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원화 가치는 5% 넘게 하락하며 전쟁 중인 러시아의 루블화에 이어 주요 통화 중 가장 약세였다. 원화 환율은 새해 들어서도 1400원 중·후반에서 고공행진 중이다.
내수가 살아나야 생산, 제조업에 숨통이 트이고 경제 전체에 훈풍이 분다. 그뿐만 아니라 불확실성이 커진 대외정세로 수출을 걱정해야 하는 다급한 국면에서 내수회복은 더더욱 절실한 과제다. 이를 위해선 지금의 불안한 정국부터 타개해야 한다. 정치권이 극한의 대립을 내려놓고 민생과 경제를 최우선으로 삼는 것이 먼저라는 뜻이다. 여야정 국정협의체를 즉각 가동하고 미뤄둔 경제관련 법안 처리를 서둘러야 한다. 정쟁의 늪에서 빠져나와 협력과 타협의 모습을 보여줘야 소비도, 경제도 길을 찾을 수 있다.